[천자 칼럼] 청와대의 두 게시판

입력 2021-08-17 17:35   수정 2021-08-23 09:59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는 온·오프라인에 각각 큼지막한 게시판이 설치됐다. 온라인에 만들어진 것은 ‘국민청원 게시판’이었고, 대통령 집무실에는 ‘일자리 상황판’이 자리잡았다. 오는 19일이면 ‘국민청원 게시판’이 생긴 지 4년이 된다. 청와대는 어제 관련 자료집까지 내고 그간의 성과를 설명했다. ‘차기 정부에서도 유지해야 한다’(80%), ‘국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상승시켰다’(62%),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했다’(61%) 등의 여론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은 다양한 여론을 전달하는 창구로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풀이나 분풀이, 정치투쟁의 장(場)이 됐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가장 많은 동의를 받은 청원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었던 ‘n번방 용의자와 가입자의 신상공개’였다. 흉악 범죄에 공분하는 심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청원에서 엄벌을 원한다고 법과 절차를 뛰어넘어 단죄할 수 있는 길은 법치국가라면 거의 없다.

다음으로 많은 동의가 이뤄진 청원은 ‘자유한국당 해산’ ‘문재인 대통령 응원’ ‘문재인 대통령 탄핵촉구’였다. 3건 모두 매우 정치적이고 상대 정파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이런 청원에 대한 답변은 사실 정해져 있다. 친여(親與)·반여(反與) 청원 몇 개를 뭉뚱그려 함께 답하되, 해당 청원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설명하는 정도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청원한다고 달라질 건 많지 않고 갈등만 부추겼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게시판에 가장 많이 등록된 분야가 정치개혁(16.6%)이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청원 게시판이 여야 간 지지세(勢)를 과시하는 대리전의 장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 대통령 집무실에 있었던 일자리 상황판은 어떻게 됐을까. 집권 직후부터 고용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청와대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설치 4주년이 된 지난 5월에도 조용히 지나갔다. 지금은 상황판 모니터가 집무실에 그대로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느 정부든 공적은 내세우고, 잘못한 부분은 숨기려 드는 게 보통이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민이 정말 원하는 게시판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최대 관심은 코로나 백신이다. 어차피 쓰지도 않는 일자리 상황판이라면, 그 자리에 백신 수급과 접종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상황판을 하나 설치하면 어떨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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